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문단 편집) === 붕괴 === 붕괴 약 1시간 전인 17시, 4층의 천장까지 가라앉기 시작하자 백화점측은 고객들이 4층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붕괴 22분 전인 17시 30분, 임원실 회의장에서는 야간보수공사 준비를 위해 떠난 일부 임원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계속 하고 있었다. 이때 A동으로부터 탕 하는 소리가 났다. 17시 40분, 4층 천장이 뚝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5층 천장에서 시멘트가 떨어졌다. 17시 47분, 다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려 4층에 있던 사람들은 비상구와 B동 방향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17시 50분, 삼풍백화점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이때 A동 5층에 있던 이영철 부장[* 붕괴 후 한동안은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잔해 속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은 야간보수공사를 준비중인 이완수 차장에게 전화로 현재 붕괴가 진행중인 것 같다고 다급하게 알렸다. 그리고 전화 1분 뒤, 건물 전체에 굉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7시 51분, 옥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5층의 뒤틀림이 가속화되어 균열이 실시간으로 번지고 곳곳에서 흙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5층 직원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른 지상층에서는 다소 늦었지만 직원들이 도망가라고 소리치며 고객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비상계단으로 탈출할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은 B동으로 대피하기도 하였고 일부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하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탈출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완전 붕괴 20초 전, 5E 지주 부분의 5층 슬래브가[* 4층 천정에 해당한다. 흔히들 옥상부터 내려앉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앞서 설명된 잘못된 옥상 냉각탑 운용으로 옥상층 균형이 쏠리면서 충격으로 훼손된 5E 기둥이 비틀렸고, 이 영향으로 5층 슬래브 접합부가 파괴되면서 내려앉은 것이 시작이었다. 옥상층은 거기에 뒤딸려 내려온 것이다.] 4층 바닥으로 완전히 주저앉았고, 이 충격으로 4층부터 지하 3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하는 수직붕괴가 일어났다.[* 붕괴의 시발점은 삼풍백화점과는 상이하지만, [[9.11 테러]]로 [[제1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제1세계무역센터]]와 [[제2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제2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세계무역센터의 붕괴|붕괴]]한 양상도 삼풍백화점과 동일하다.] [youtube(gIRCnvWNJeI)] 위 영상은 실제 영상이 아닌 재앙의 청사진에서 재현된 시뮬레이션 영상이다. [[파일:attachment/sampoong03.jpg]] 결국 1995년 6월 29일 17시 52분, 삼풍백화점은 옥상으로부터의 붕괴 시작 5분 만에 땅을 향해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위 자료사진은 완전 붕괴 30초 후 백화점 맞은 편 삼보상호신용금고 건물 5층에서 촬영되어 [[서울특별시청|서울시]]에서 발행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 본문 첫장에 인용된 사진이다. 위 업로드된 사진은 문건에서 2페이지에 걸쳐 인용되는 바람에 반이 짤린 상태로 스캔된 것이다. 원본사진에는 무너지지 않은 북쪽 엘리베이터탑까지 담겨있다. 해당 문건에는 이 사진외에도 구조대가 오기 전 상황 사진 4장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었고 사진 촬영자 신상정보까지 있다. 이 사진 자료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최초의 기록물이기에 가치가 대단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등 많은 삼풍백화점 관련 매체들이 이 사진자료를 참고하였다. [[https://www.instiz.net/pt/1919338|#]] 여기 들어가면 붕괴 후 CCTV를 볼 수 있다.] [[파일:삼풍백화점 지붕.jpg]] 붕괴된 A동의 측면 모습. 5층부터 1층의 지붕이 샌드위치처럼 쌓여있다. 이 바람에 삼풍백화점 A동의 지상층 구조물들은 그자체로 거대한 프레스기가 된것이다. 맨 위의 단층이 5층 지붕이고, 맨 아래의 단층이 1층 지붕이다. 위에서 서술했던 부실시공 때문에 기둥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5층 지붕부터 내려앉으며 연쇄적으로 붕괴되어 지붕들이 켜켜이 쌓인 형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A동 지상층에 머물던 사람들 중 미처 건물 밖이나 B동으로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한 채 압사당했다. 즉 사진의 지붕 사이 사이에는 수십 명이 압착당해 죽어 있는 것이다. 붕괴 이후 매몰지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전부 지하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단 1~5층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진에서 보듯 붕괴되지 않고 위태롭게 서있던 A동의 기둥부에 매달려 있던 생존자들도 있었다. 여기서 단 한명도 생존하지 못했다는 건 매몰된 사람들 중에선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 지하 4층은 A동 쪽에는 없고 B동 쪽에만 있기에 붕괴되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붕괴 초기에는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한 쪽으로 쏠리다 갑자기 밑으로 떨어졌으며, 이에 놀란 쇼핑객들이 여기저기서 "악!", "사람 살려!"라고 소리쳤다고 하며 사고의 순간을 전했다.[* 96' 기자가 본 100대 뉴스, 한국편집기자회. 471 페이지] 이와 관련한 일화로 당시 상품권 매장[* 당시 A동 5층에 식당가에 있었으나, 붕괴당일 5층의 폐쇄로 1층 로비에 임시매장을 설치했다.] 직원의 후일 증언에 따르면, 지하 사무실에서 쉬다가 굉음 소리를 듣고,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연기가 가득해서 에어컨이 폭발한 줄 알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비상구를 통해 B동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때 로비매장에 있던 친구가 생각나 로비 쪽을 보는 순간, 탁 트여있던 로비가 잔해로 막혀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부상자의 상당수는 붕괴 전 또는 직후에 자력으로 탈출하였다. 붕괴 당일 밤 사상자 집계치는 사망 22명, 부상 696명이었는데[[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97611|#]], 당일의 구조체계는 구조작업 항목에 나오듯 매우 허술했다. 이런 구조환경 아래 당일 저녁 순식간에 700명을 모두 구하기란 말도 안 되니, 부상자는 상당수 붕괴 직전 또는 직후에 자력으로 탈출하였거나 행인, 인근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처음 집계치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이 탈출한 줄 알고 안도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이후 날이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망자수를 보며 충격에 빠져버렸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총 희생자수는 총 502명이었는데 그중 직원이 306명, 그들 중 파견직원이 221명이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주기...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편 중] 다시 말해 일반 쇼핑객 희생자는 200명 남짓으로 저정도 규모의 백화점 치고는 거의 텅빈 수준에 가깝다. 이랬던 이유는 우선 냉각탑 정지로 백화점 내부가 상당히 더웠기 때문에 상당수 고객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쇼핑을 포기했고, 10분 전 즈음부터 건물 전체에 굉음과 비상벨이 울려댔기 때문에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빠져나간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직원들은 전조가 계속 있었음에도 아무래도 쉽게 자리를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봉변을 당했다. 몇 푼 안 되는 '돈'에 눈이 멀어 직원들의 대피조치를 시키지 않은 경영진들이었건만, 막상 참사 당시의 삼풍백화점은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을 정도로 한산했고 애초에 에어컨 작동이 안되어 찜통 더위 속 정상영업이 불가능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행인들과 인근 건물에 있던 사람들까지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렸다. 주변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몇 년 후 일어난 미국 [[9.11 테러]]에 휘말린 사람들처럼 먼지를 뒤집어쓰고 호흡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후유증을 겪었다. 특히 호흡기 문제 부분에서 [[석면]] 문제도 심각하였는데 2009년 이전에 건설된 건물은 거의 100% 석면이 함유된 건축 자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 건물이었고, 이는 삼풍백화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상자, 구조대, 시민, 기자 등 수많은 사람이 상당량의 석면을 호흡기로 마셨다. 붕괴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 현장에 석면 먼지가 가득하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이다. 당시 국내 기준으로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생존자는 대부분 지상 1~2층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지상 1층은 출입구와 가까웠기 때문에 붕괴 당시 바로 대피한 사람이 많았다. 지상 2층은 관리실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대피시키기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연결통로를 통해 B동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대피 도중 중앙홀 연결통로가 끊어져서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당시 지하 1층 식품관에 있었던 사람이 상당히 많아서[* 사고 발생 시간이 마침 장보러 나온 주부들이 많은 시간대였다.] 그 사람들이 거의 사망했다.[* 지하 1층에는 생존가능한 공간이 일부 있었고, 실제로 며칠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슈퍼마켓 쪽은 붕괴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붕괴 직후 자력으로 빠져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지하 2층과 3층은 주차장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 지하주차장은 붕괴 후에도 자력으로 탈출할 만한 일말의 여지가 있었다. 붕괴 직후 주차장에서 탈출한 생존자의 증언이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99026|#]]] 거대한 먼지 구름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서초구]], [[강남구]] 전체와 잠실 일대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저 때가 하필 초저녁 시간대라서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하늘 멀리서 웬 먼지 폭풍이 날아오더니 아파트 단지 전체를 휩쓸자 놀란 부모들이 황급히 달려나와 아이들을 도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했다. 이 먼지폭풍은 근처의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지방법원]] 맞은 편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생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된 당시 기사에서 붕괴 직전의 긴박함을 알 수 있다. [[https://www.instiz.net/pt/1500208|기사 링크]]. B동은 건물 자체는 멀쩡했지만, 붕괴 당시 먼지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뒤섞여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https://www.google.com/amp/s/mnews.joins.com/amparticle/3089593|당시 B동에 있던 시민의 증언]] [[https://history.seoul.go.kr/nuri/bbs/bbs.php?sub_type=view&b_idx=1144&pidx=146897899175&didx=115&bs_idx=115&s_where=&s_text=&search_status=all&s_cate=&s_recom=&s_year=&s_month=&s_day=&page_num=12|붕괴의 충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B동 1층]][* 옥외주차장 쪽 출입구에서 중앙홀 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왼쪽으로 '서울은행' 간판이 보인다.] 사진 속에서 보이듯 A동이 완전히 [[붕괴]]된 마당에 B동은 멀쩡했으나, 역시 붕괴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폐쇄 조치한 후 1998년 10월에 철거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1월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붕괴 사고 사흘 후 실시된 현장조사 결과 B동도 마찬가지로 설계강도보다 모자라게 시공되었음을 확인했다. B동이 붕괴되지 않은 것은 딱히 안전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A동이 먼저 무너진 것 뿐이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